초등학생 조카가 받아쓰기 숙제를 하고 있는 걸 옆에서 본다. 아, 너도 정말 사는 게 힘들구나. 영어 받아쓰기 공부법을 시도했던 나도 사는 게 참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게 왜 사서 고생을 하노.
영어 듣기가 개판이고 쓰기는 더 개판이라면 영어 받아쓰기는 ‘받아’ 쓰기가 아니라 ‘발로’ 쓰기에 가까워진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면서 30년 넘게 영어를 하고 있는 지금, 영어 듣기는 그래도 좀 하지만 쓰기는 여전히 개판이다. 영어 받아쓰기를 시도했던 건 아주 오래전 일이니 그때는 더 개판이었을 것이다. ‘개판’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 나의 과거 및 현재의 영어 실력을 표현함에 있어 가장 강렬하게 생각나는 단어라고는 이런 저렴한 단어밖에 없는 걸 보니 한국어 쓰기도 영어 쓰기에 비해 딱히 뛰어나지 않은 것 같다.
조카의 받아쓰기를 구경하고 있자니 맞춤법과 띄어쓰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받아쓰기는 사실 정교한 발달에 있어 아주 좋은 훈련이긴 하다. 집중해서 들어야 하고, 단어도 제대로 파악해야 하고, 철자도 틀리지 않아야 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유발되는 구토 증상도 참아내야 한다.
영어 받아쓰기로 영어 실력을 늘리려는 나의 시도가 품고 있었던 가장 큰 문제점은 영어 받아쓰기를 하기 전에 듣기 실력과 문장 실력을 제대로 키워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받아쓰기는 없는 걸 생기게 만드는 활동이 있는 게 아니라, 있는 걸 꺼내서 다지는 활동이었어야 했다. 받아서 쓰기 전에 그냥 쓰기를 먼저 했어야 했던 거다. 받아쓸 게 머릿속에 없는데 뭘 받아쓴담?
그저 영어 받아쓰기가 좋다고 하는 말만 어디에선가 주워듣고 하려고 했던 게 문제다. 하여튼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걸 무조건 따라 하는 게 문제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