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를 달라고 졸라도 안 해주는 엄마가 있을까? 있다. 우리 엄마. 학원도 가끔씩 급할 때만 겨우 보내줬던 거라 어쩔 수 없이 내 친구 EBS 방송과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다.
EBS 방송은 정말 좋은 친구였다. 저렴하고, 보기 쉽고, 내용도 다양하고, 구성도 알차다. 늦은 밤까지 EBS 방송을 보면서 공부를 하다가 엄마 아빠가 잠자리로 들어가면 영화 채널로 같은 걸로 바꿔서 기꺼이 놀게 해주는 의리 넘치는 친구였다.
아니, 폰으로 보면 되지 왜 그렇게 하냐고요. 아, 예, 폰이 없던 때거든요. 아, 아니다, 폰은 있었는데 폴더폰이었던 시절이거든요. TV는 거실에 있고, 컴퓨터는 안방에 있고요, 예예.
지금처럼 온라인 영어 강좌가 많았던 시절도 아니고, 시골 촌구석에 있어서 특별한 영어 학원 같은 것도 없었다. 물론 있었어도 엄마가 안 보내 줬을 거니 별로 달라졌을 것도 없다.
EBS 영어 방송은 명랑했다. 진행하는 사람들은 항상 열정이 넘쳤고, 기분이 항상 좋은 것 같았다. 설명도 또박또박 잘해줬다. 기본적으로 누가 뭘 설명해 주는 걸 듣는 걸 굉장히 지루해하는 특장점을 갖고 있었기에 또박또박 잘해주는 설명은 다 흘려 들었다. 지금 대충 내용을 떠올려 보니 (기억 같은 건 금융위기 때 다 갖다 팔아먹었는지 아주 희미하다) 잘 듣고 따라 하면 실력이 많이 늘 수 있도록 짜인 교재였다. 물론 듣고 딱히 따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력도 늘지 않았다. 방송을 들으면서 ‘오늘은 엄마 자러 가면 TV 어떤 거 돌려볼까’ 고민하느라 좀 바빴다.
EBS 방송은 내 친구였다. 기회가 오자마자 바로 안녕했지만, 그래도 좋았던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