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한사전 통째로 읽기를 시도했던 적이 있다. 이게 다 동네 언니 때문이다.
엄마를 따라 동네 언니네 집에 놀러 가서 책장을 기웃거리다가 책을 하나 뽑아 들고 읽기 시작했다. 잠깐 훑어보려던 거였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계속 보고 있었다. 엄마와 동네 언니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서 책을 봤다. 글의 흐름에서 사람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와,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7막 7장>이었다.
소설책과 만화책만 보던 나에게 새로운 장르의 책이었다. 영어를 잘 못하는 상태로 유학을 가서 화장실에서 힘겹게 공부했다는, 특히 영어 사전을 통째로 외웠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영어 사전을 통째로 외우고, 성경도 통째로 외우니 읽기도 술술, 말도 술술이라 했다. 오호라, 괜찮은데.
괜찮긴 뭐가 괜찮다는 건지. 정말 너무 괜찮지 않았다. 영한사전으로 도전을 해보는데 통째로 외우는 건 둘째치고 읽어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 도대체 이걸 통째로 외우려면 얼마나 봐야 한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당연히 통째로 외우는 건커녕 끝까지 읽지도 못했다. (끝까지 읽지 못했다는 말 자체가 심히 과대 평가된 말이다.)
영어 사전을 통째로 외우기 시작할 때의 홍정욱과 그 당시의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영어를 쥐뿔도 못 한다는 거였다. 그거 외에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었다. 영어를 미친 듯이 해서 몇 개월 만에 마스터하고 하버드까지 간 사람이다. 애당초 내가 따라 해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왜 몰랐을까 그걸.
하여튼 주인을 잘못 만나 여러모로 고생하는 나의 머리통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다행히 나도 나름 현명한 구석이 있어서 그 동네 언니네서 빠르게 책을 읽었던 속도만큼이나 재빠르게 영한사전 통째로 읽기도 그만두었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은 다 동네 언니 때문이다.